여기에서는 '거리 측정 기준, 도로, 지도, 숙박시설, 여행수단'에 대한 내용을 요약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우리는 신약 시대의 상황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도화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시스템이 있었다는 것도 발견을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통해 신약 성경에 나타난 바울의 전도여행이나 신약 인물들의 동선에 대한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도 있다.
거리 측정 기준
거리를 측정할 때 기본적인 기준은 손가락 마디와 마디 사이의 거리였다. 하지만 기본적인 기준이 되는 측량의 단위는 발 길이(foot)였다. 발길이가 기준이 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로마의 296밀리미터에서 갈리아의 330밀리미터까지 다양했다. 중동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단위는 가운데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의 길이인 규빗이었다. 규빗은 로마 시대에도 사용이 되었지만, 표준화는 되지 못했다. 이보다 더 긴 단위는 스타디온(stadion)인데, 1 스타디온은 600 발 길이(600피트)로 헬라인들이 육상 트랙의 길이를 나타낼 때 사용하였다. 로마인들은 1000 발 길이(1000피트)를 밀리아 파수스(milia passus)라 명명하고 이를 표준으로 삼았다. 로마인들은 도시와 도시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때, 전문적인 거리 측정사를 고용하였는데, 이 때문에 기준 길이가 조금씩 달라도 대략적으로는 정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거리를 표시하는 이정표는 돌기둥으로 만들어 세웠으며, 이 돌기둥에는 "도로 이름, 도로를 놓은 공직자의 이름과 직위, 도로로 연결된 두 도시의 거리"가 표기되었다. 긴 거리를 표시하는 가장 일반적인 단위는 "하룻길 여행"이었다. 일반적인 환경에서 도보로 하루 동안 갈 수 있는 거리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32km(20마일)이었다. 이는 보통의 사람이 걸었을 때의 기준이고, 로마 제국의 급사와 같은 경우는 하루에 80km(50마일)를 가기도 하였다. 하룻길이라는 개념은 고대근동의 문화만큼 오래된 것이다. 창세기 30:36과 출애굽기 3:18에는 '사흘길 여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도로
신약 시대 사람들은 오늘날의 현대인들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여행을 했다. 사업과 정부의 일, 휴양과 요양, 올림픽 구경 등의 이유로 도시와 도시 사이를 오갔다. 로마인들은 단순히 관광 차원으로 여행을 즐기기도 하였다. 여행의 방법은 육로 여행과 해상 여행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육상 여행은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사이에 다양한 변수와 위험이 발생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영토에 도로를 놓고 경찰력을 강화하여 강도나 도적떼와 같은 여행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 노력하였다. 또 군대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 가급적이면 도로를 직선으로 설치하려 했고, 강을 건너는 다리 공사와 산을 통과하는 터널 공사로 하였다. 로마인들은 도로 공사를 할 때, 땅을 파고 그 속에 자갈을 부어 기초 공사를 진행 후 도로를 놓았다. 교통량이 많은 지역에는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큰 돌을 깔고 그 위에 자갈을 부었다. 도로에 빗물이 잘 빠지도록 항상 양쪽 끝보다는 도로의 중앙부분은 높게 했고, 도로 양쪽 끝으로 도랑과 연석을 놓아 줄을 맞추었다. 도시의 주요 도로들에는 그 도로를 따라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를 마련하였다. 인도가 설치되지 않은 시골의 도로들에서는 사람들이 마차에 치이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도로 사용의 우선순위는 군인과 정부기관의 사람들에게 있었다. 로마가 설치한 도로망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주간 간선도로가 설치되기 전까지 독보적인 존재로 있었다.
지도
고대세계의 교육을 받은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대략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수 있었다. 피타고라스 시대(주전 540년) 이래로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은 상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주전 200년, 알렉산드리아의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였는데, 이는 지금의 계산과 몇백 마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경도와 위도를 이용하여 위치를 나타내는 체계를 고안해 냈다. 고대 여행자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지도를 구입할 수 있었다. 도로에는 이정표 목적으로 세워진 돌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리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도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고, 그 지역에 있는 숙박시설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도가 필요했다.
숙박시설
어떤 이유에서든 먼 거리를 여행하게 되면 반드시 숙박시설을 이용해야만 했다. 여관은 보편적이었으나 그 수준은 천차 만별이었다. 안락한 공간에 식사가 제공되는 곳도 있었고, 짐승을 재울만한 마구간이 있는 곳도 있었다. 여관에는 수레를 고쳐주는 기술자가 있는 여관도 있었다. 여관은 늘 사람들로 붐볐기 때문에, 여관을 발견한다고 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인이 여관을 사용하게 되더라도 정부 일을 하는 사람이 갑자기 와서 방을 빼앗을 수도 있었다. 도로와 마찬가지로 여관도 사용의 우선순위가 국가 공직자에게 있었다. 특별히 황제나 속주 총독으로부터 받은 통행증이 있는 사람은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 통행증을 가진 사람은 여관 주인에게 무엇이라도 요구할 수 있었고, 여관주인은 그의 부탁을 무조건 들어주어야 했다.
여행수단
신약시대의 사람들이 여행을 할 때 걸어다녔을 것이라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들은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감옥으로 책과 양피지와 겉옷을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 그가 걸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임신한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올 때도 걸어서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요셉은 약간의 재력가였으므로 그들은 수레와 같은 것을 탔을 것이다. 가장 싼 교통수단은 나귀였고, 마차와 수레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마차와 수레의 종류도 다양했는데, 한 마을을 떠날 때 그곳에서 마차를 빌렸다가 다른 마을에 도착해서는 그 마차를 반납하여 돌려보내는 시스템도 있었다. 또 비용만 지불하면 운전사를 대동할 수도 있었다. 노예들이 운반하는 가마도 있었다. 여행을 위해서는 음식, 물, 그릇, 의복과 같은 필수품을 반드시 챙겨서 다녔고, 이러한 물품들 때문에라도 이를 실을 수 있는 기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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