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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신약 시대의 사회와 문화' 요약: 유대교의 구전 전승, 유대교의 종교 분파

by 도서리뷰어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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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구전전승

유대인들에게는 기록된 전승(성경) 외에도 구전으로 전해지는 유대교의 전승이 있다고 한다. 고대 율법 학자들 사이에서 인정이 되는 유대인들의 옛 전승에는 '모세로부터 구전된 율법의 의미 설명'과 '에스라와 같은 학사의 구전 교훈'이 대표적이다. 

 

고대율법 학자들에게 인정받는 구전

- 모세의 구전

- 에스라의 구전

 

구전되어 온 유대적 해석은 미쉬나, 게마라, 탈무드, 미드라쉬 등으로 보존이 되었다. 각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미쉬나(Mishnah):

"반복하다, 연구하다"의 의미를 지니는 단어.

모세가 성문으로 받은 율법이 아닌 구전으로 받은 율법.

유대인들로부터 매우 존경받던 랍비인 유다(Judah)의 지도하에 주후 2세기말 만들어 짐. 

미쉬나는 크게 6책(세데르)으로 구성되고, 그 아래로 63개의 소논문(마세케트)으로 나뉘며, 이는 다시 각 장(페렉)과 절(미쉬나)로 나눠짐.

 

 

2. 게마라(Gemara):

아모라(Amora, 말하는 사람)로 알려진 랍비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미쉬나의 주석.

미쉬나가 편찬된 이후 랍비들이 연구, 토론, 해설한 내용으로 이뤄짐.

 

 

3. 탈무드(Talmud):

'연구, 교훈'의 의미를 가지는 단어

4세기와 6세기에 미쉬나와 게마나를 합쳐 놓은 책

4세기 중반 팔레스타인에 있는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예루살렘 탈무드"라고 하고, 6세기 중반 바빌론의 학교에서 완성된 것을 "바빌론 탈무드"라고 함.

바빌론 탈무드는 예루살렘 탈무드보다 그 분량이 4배 정도 많고, 탈무드의 표준으로 인정을 받음(일반적으로 탈무드라고 할 때는 "바빌론 탈무드"를 의미함).

 

 

4. 미드라쉬(Midrash):

탈무드에 포함되지 않는 해석 자료.

주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시명기, 시편 등의 본문을 주석함.

글의 양식은, 법조문, 설교문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음.

 

 

 

유대교의 종교분파

우리가 유대교라 할 때, 일반적으로 이들의 사상은 율법이라는 큰 틀 속에서 견고하게 일치를 이룰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법이라는 것이 원래 성격상 보수적이라 변화를 싫어하고, 그러한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어렵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교를 면밀히 살펴보면, 그 안에는 다양한 분파가 있고, 어떤 경우는 율법에 관해 전혀 상반된 이해와 해석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소위 "정통파 유대교"를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퍼거슨(E. Ferguson)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느 시대든지 거의 아무거나 무엇이든지 믿던 유대인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기독교 초기 시대는 더욱 이러했다고 할 수 있다. 유대 "정통"의 요소들을 나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과제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유대교를 살필 때, '하나의 집단'이 아닌, '다양한 유대교'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 당시의 분파들은 사두개파, 바리새파, 헤롯당, 열심당, 에셋네파로 나눠볼 수 있는데, 각 분파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사두개파

이들은 스스로를 다윗이 임명한 대제사장 사독의 후예라고 주장함.

'의로운 자'라는 의미의 사디크(Saddiq)라는 단어에서 사두개파라는 이름이 나옴.

모세오경인 "토라"만을 권위 있는 성경으로 인점. 토라가 가르치지 않는 내용을 교리로 규정하거나 설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극단적 보수주의입장을 취함(일반적으로 토라에 '부활'에 대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부활'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간혹 부활의 개념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음)

유대의 평민들과 접촉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음(지위가 높은 사람들 또는 부자들에게서만 지지를 받았음).

주후 70년 성전이 파괴된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짐

 

 

2. 바리새파

'바리새파'라는 명칭에 대한 정확한 기원을 결정하기 어려움.

이들은 당대의 자유주의자라 할 수 있음. 이들은 사두개인들과 달리 토라만의 권위를 인정할 뿐 아니라, 선지자들의 책들도 권위있는 성경으로 인정함. 이들은 상황이 변함에 따라 새로운 교훈을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성경을 해석함. 

토라가 규정하지 않는 새로운 규정들을 만들어 지킴. 예를 들어 '하누카(Hanukkah)'와 '부림절'을 절기로 인정하고 지키기 시작함. 이 때문에 어떤 학자는 현대의 유대교를 "바리새파의 불멸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함.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는 힐렐(Hillel) 학파와 샴마이(Shammai) 학파로 나뉘었음. 힐렐학파는 율법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입장을 가졌으며, 소수의 사람들이 이를 추종함(바울의 스승인 가말리엘이 힐렐학파였음). 반대로 샴마이학파는 힐렐학파에 비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함. 이들은 이방인들과 일절 접촉하지 않았으며, 토라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지지함. 또 샴마이학파는 과격한 반로마경향을 가지고 있었음. 

주후 70년 이후에는 '바리새파'라는 용어가 일반적인 용례에서 사라지고, "랍비"로 대체가 됨(유대교의 당파나 종파를 덜 강조하게 됨).

 

 

3. 헤롯당

헤롯당은 헤롯의 후손이 다시 보좌에 오르기를 간절히 소망한 당파였음.

신약성경에서 헤롯당은 항상 바리새파와 관련하여 나옴(정치적 동맹).

헤롯당에 대한 신약의 언급은 누가복음에 나옴. 빌라도가 예수님을 평결하는 동안 예수님은 헤롯 안디바에게 보내짐. 안디바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 그를 때리고 조롱하도록 허락한 뒤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는데, 이 일로 안디바와 빌라도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졌음.  

 

 

 

4. 열심당

예수님의 제자 시몬이 "셀롯인(Zealot, 열심당)"으로 언급됨.

열심당은 이들이 로마인들과 격렬하게 투쟁하여 예루살렘을 방어한 과격한 단체라서 그렇게 이름 붙여짐.

하지만 마가복음 3:18과 마태복음 10:4은 시몬은 가나안인이라고 부르며, 요세푸스는 정치적 분파로서 열심당은 66년에 로마를 대항한 폭동에 발생하기 전에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함. 이러한 이유로 열심당의 기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함.

주후 54년에 시카리(Sicarii) 또는 암살단(Assassins)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최초로 언급되는데, 이들을 열심당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있음. 하지만 연대기적으로 맞지 않음.

 

 

5.에세네파

신약성경에 언급은 되어 있지 않으나 당시 유대인 사상에 영향을 많이 준 집단.

그들의 신학은 묵시적이며, 그들의 삶은 절제와 금욕주의에 가까웠음.

세례 요한이나 바울을 에세네파와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있으나 큰 의미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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