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시대의 사회와 문화"는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문화적인 배경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의 호프대학에서 고전과 역사 과목을 가르쳤던 앨버트 벨 교수의 저서이다. 여기에서는 당시의 시간 개념인 '시(hour)', '주(week)', 달(month)', '해(year)'를 간단하게 살펴보고, 예수님의 탄생시기에 대한 내용,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기원전(B.C)과 기원후(A.D)의 개념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고자 한다.
시간의 개념
현대인이 지금과 같은 정확한 시간에 집착을 하게 된 것은 중세 수도원에서 비롯되었다.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정해진 때에 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또 한밤중이라도 일어나 기도를 해야 했다. 이러한 수도사의 필요에 의해 회중시계, 손목시계가 발명이 된다. 손목시계를 발명한 사람들은 이 장치를 '손목시계'가 아닌 '시간 측정기(chronometer)'라 불렀다. 시간에 대한 현대인들의 집착과는 달리, 고대인들은 우리처럼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시간에 대한 인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세네카에 따르면 당시 사용하던 물시계는 물시계끼리 시간이 맞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하루에 대한 기준도 저마다 달랐다. 고대인들은 하루의 시작 기준이 일반적으로 동이 틀 때로 보았지만, 하루에 대한 기준은 국가간에 차이가 있었다. 바벨론은 해가 뜨고 다음 해가 뜰 때까지를 하루로 보았고, 아테네는 해가 지고 다음 해가 질 때까지를 하루로 보았다. 움브리아는 정오부터 다음 정오까지, 헬라인과 유대인들은 해가 지고 난 후부터 다음 해가 질 때까지를 하루로 보았다. 로마의 경우, 보통의 사람들은 새벽부터 캄캄해질 때까지를 하루로 보았으나 근무일을 정해 놓은 로마의 사제들과 당국자들은 자정부터 다음 자정까지를 하루로 보았다.
시(hour)
하루를 세분화하는 것도 문화마다 달랐다. 헬라인과 유대인은 공식적인 '시(hour)'를 사용하지 않았고, '닭 우는 때, 시장 여는 시간, 등불 켤 시간' 등 다양한 시간대에 이뤄지는 활동으로 하루의 부분을 묘사하였다. 구약성경에는 다니엘서를 제외하고는 '시'의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데, 이는 구약시대 유대인들에게 시간을 재는 공식적인 체계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헬라인들은 낮 전체를 12 부분으로 나누는 개념을 발전시켰지만, 이 구분을 시간의 개념으로 사용한 것은 알렉산더 대제 이후였다. 해가 떠있는 낮을 12 부분으로 나눈다는 개념은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고대 문헌에는 제 6시와 9시가 자주 언급이 되는데, 이 시간은 정오 무렵과 한낮의 낮잠을 자고 난 이후의 시간을 말한다. 이 두 시간의 의미는 정확한 때를 알 수 없을 때의 시간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이야기 속에서 정확한 시간이 큰 의미가 없을 때, 제6시나 제9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밤도 시간을 나누기는 하였지만, 낮처럼 세분화하지는 않았다. 로마인들은 일반적으로 밤의 시간대를 3시간씩 4 단위로 나눴다.
주(week)
우리에게 '주(week)'는 익숙한 시간 개념이지만, 유대인을 포함한 고대인들의 시간개념에는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다. 갈라디아서에도 보면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4:10)"라고 표현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경우 율법을 따라 7일의 패턴을 가지고 살았지만, 고대인들에게 '주'의 개념은 없었다. 하지만 주의 개념이 없었어도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휴식일은 있었다. 로마의 달력을 보면 공휴일이 150일이 있었다고 한다. 또 마을이나 동네마다 그들만의 축제일 등이 있어, 그런 날들은 공유일로 인식하고 쉴 수 있었다.
달(month)
'달(month)'은 달(the moon)의 변화에 의해 만들어졌다. 모든 문화에서 제사장이 하는 중요한 역할은 음력과 양력의 차이를 정확하게 기억해 두었다가 첨가해야 할 여분의 달이 언제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태음력과 태양력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이 문제를 율리우스 케사르는 인위적인 기간을 매달에 고정시키고, 4년마다 하루가 더 있는 윤년 제도를 도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처음에는 이 제도가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에 의해 이 제도가 약간 수정이 되었고, 이후 이 달력은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을 하고 있다.
해(year)
'해(year)'를 정확하게 결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로마인들은 언제 해가 시작되었는지 결정할 수 없었고,그렇다고 임의로 한 시점을 정하여 새롭게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그 해의 콘술의 이름을 따라 해를 불렀고, 아테네 사람들 역시 그 해의 아르콘(고위 행정 장관)의 이름으로 그 해의 이름을 불렀다. 고대의 왕들은 자신의 통치가 시작될 때부터 해를 세었지만, 이것이 자신이 왕위에 오른 정확한 시점을 의미하지는 않았고, 해를 셈하는 방법도 각 왕마다 제각각이었다.
예수님의 탄생시기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 되었을 때'에 진행된 호구 조사와 연결시킨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때와 가장 가까운 인구조사는 주전 8년에 시작되었고, 그다음 인구조사는 주후 14년에 실시되었다. 주전 8년의 인구조사는 로마인들이 유대 지방을 속주로 편입시키려는 목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예상 조사기간은 5년 정도였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모두 예수님의 탄생 날짜를 "유대 왕 헤롯 때"라고 말한다. 헤롯은 주전 37년부터 4년까지 통치를 했기 때문에 이 언급만으로는 보다 정확한 시기를 확인할 수는 없다. 탄생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서는 헤롯이 무죄한 영아들을 살해한 이야기이다. 헤롯은 베들레헴의 2살 이하의 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하였다. 복음서 기사에 따르면 헤롯은 이 명령을 자신이 죽기 직전에 내렸었는데, 헤롯이 주전 4년에 죽었으므로 그가 두 살 이하의 아이를 찾고 있었다면 예수님은 주전 6년 경에 탄생하신 것이 된다. 물론 예수님의 탄생 시기를 주전 8-7년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고, 주전 3-2년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주전(B.C)과 주후(A.D)
우리가 사용하는 B.C와 A.D는 6세기 중엽 로마에 살았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라는 수도승에 의해 만들어졌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던 때가 티베리우스 황제 재위 15년인 서른 살쯤이라는 누가복음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연대를 구성하였다. 그의 계산법에 따라 예수님의 탄생하신 해를 '첫 번째 주의 해'라 하며 A.D(라틴어로 anno Domini)라고 이름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의 기록에 대한 부정확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 계산에는 4~6년 정도의 편차가 있다. 최근 출간되는 학적인 문서에는 B.C와 A.D 같이 기독교적 함의가 담긴 연대 표현을 피하고자 B.C.E(before the Common Era 통상적인 시대 이전)와 C.E(Common Era 통상적인 시대)를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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