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평전의 4번째 장은 '안디옥'이다. 톰 라이트는 안디옥의 배경과 당시 기독교 공동체의 상황, 바울의 사역을 이 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한다. 한 장으로 이루어진 이 내용들을 위로의 아들 바나바, 유대인과 비유대인, 시리아 안디옥, 안디옥의 '예수 따름 이들', 피스티스, 크리스티아노이,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소제목으로 나누어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위로의 아들 바나바
바나바의 본명은 요셉이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란 뜻을 지닌 그의 별명이었다. 그는 구브로 출신에 레위 지파의 유대인이었다. 그의 별명과 같이 그는 부드럽고 너그러운 영혼을 가진 인물이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요청에 따라 바울을 만나기 위해 다소에 왔다. 당시 안디옥에는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는, 지금까지는 예수 공동체 안에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었다.
유대인과 비유대인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방 사회에 자리를 잡았고, 문화를 공유하며 살았지만, 비유대인들과의 선은 분명했다. 사업상 거래를 할 수 있었지만 동업은 하지 않았고, 서로 친구가 될 수는 있었으나 통혼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구분의 밑바탕에는 그들과 다르다는 의식이 있었다. 이 다름은 눈에 보이는 분명한 것들이었다. 유대인들은 가장 흔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으며, 비유대인들이 쉬는 날 없이 일할 때에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빌미로 일주일에 한 번 게으름을 피웠다.(비유대인의 눈으로 볼 때는 그랬다.)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유대인들은 하나님만을 믿는 유일신앙인들이었으나, 당시 비유대인들이 볼 때는 '무신론자'였다. 유대인들은 지역 축제에 참여하지 않았고, 지역의 신당에 희생 제물을 바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정작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이라 할만한 그 어떤 형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비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을 이질적인 존재로 여기고 거부했던 것은 아니다. 비유대인 중에 극히 소수는 유대인들만의 문화를 존중하고 동경하였고, 그래서 유대교로 개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리아 안디옥
안디옥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기원전 2세기 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로부터 기원하였다. 시리아 안디옥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도시로, 교역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였다. 이 도시에는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았고,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는 이 도시를 로마의 새 속주인 시리아의 수도로 삼았다.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곳을 자치시로 승격을 시켰는데, 이 도시의 인구는 25만 명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인구가 늘어나게 되자 온갖 종류의 사회그룹과 문화그룹이 등장을 하였다.
안디옥의 '예수 따름 이들'
안디옥에 자리를 잡은 '예수 따름 이들'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유대인들뿐 아니라 비유대인들에게까지 알리기를 원했다. 이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하나님 나라를 이미 여셨다고 선포하였다. 또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더 넓은 세계를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이에 비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자신들이 따르던 이방문화를 버리고 성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된다. 이방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많은 유대인들은 이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처럼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매우 중요했다. 바나바가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요청을 따라 이곳까지 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 신자들의 변화된 삶과 신앙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에 있는 벽을 허물었다고 믿었다. 이러한 견해는 바울도 동일하게 가졌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바나바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회심을 의심했고, 그들이 예전 모습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피스티스
그리스어 '피스티스'는 '믿음'으로 번역되는 단어인데, 종종 '신실함', '신뢰할 수 있음', '충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단어는 '믿는 사실', '믿는 것', '믿는 행위' 모두를 가리키며, 이러한 믿음을 근거로 한 '개인의 헌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당시 로마 황제가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였던 충성도 바로 '피스티스'였다. 바울은 이 단어를 즐겨 사용하였는데, 그는 지금까지 설명한 의미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하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보인 이 신뢰와 충성이 어떤 이가 진실로 이 새 공동체의 지체인지 아닌지를 주여주는 중요한 표지이자 실체"로 이해하였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문화나 성별, 혈통과 민족을 뛰어넘은 새로운 단일 공동체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이 공동체는 그런 단일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 단일 공동체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피스티스'였다.
크리스티아노이(메시아 백성)
누가는 이 시기에 안디옥의 '예수 따름 이들'이 '크리스티아노이'(메시아 백성)라 불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이 말이 유대교 세계와 별개 조직을 갖춘 운동을 암시하며 적어도 한 세대 남짓은 이런 것이 존재했음을 밑받침하는 증거가 없음을 지적한다. 이 말은 '예수 따름 이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한 것은 아니고, 외부인들이 이들을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40년대를 살았던 안디옥 사람들은 '크리스토스'라는 말을 한 개인의 이름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성령의 인도하심
예수 공동체가 보여주는 모습, 새로운 삶의 방식은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에 의존한다. 이것은 애초에 구약 성경이 약속했던 것이고, 예수님 직전에는 세례 요한이 재차 약속했던 것이었다. 바나바와 바울이 사명을 받아 첫 협력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성령님의 역사하심 때문이었다. 당시 예언자 중 한 사람인 아가보는 가뭄이 전 세계를 덮칠 것이라 예언하였다. 이 예언을 들었던 안디옥의 공동체는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기 전에 예루살렘 공동체를 먼저 걱정하였다. 예루살렘은 공동체가 더 커지면서 살아남려는 투쟁을 벌였고, 당국으로부터 박해도 받았다.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야 '교회의 연합'과 '타 지역 공동체에 대한 후원' 등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시기에는 그런 사고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디옥 공동체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같은 신앙을 가진 다른 지역의 공동체를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안디옥 공동체는 바나바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 그들이 준비한 연보를 전달하였다. 이때가 아마도 46~47년경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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