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와 다소(다메섹)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아라비아를 가게 된다. 1세기 '아라비아'는 굉장히 넓은 지역을 포괄하는 지명이었다. 아라비아는 시리아 동부로 조금 들어간 지역에서 남쪽 저 멀리 시나이 반도까지 아우르던 고대 나바티아 왕궁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를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아라비아를 통해 그곳이 이집트 동쪽에 있는 시내 반도의 시내산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내산은 구약의 역사를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바울이 간 아라비아가 시내산이었다는 사실은 구약 엘리야 선지자에 대한 기록이 근거를 더해준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대결 이후 호렙산으로 도망을 쳤다.(호렙은 시내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거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출발했던 곳에 가까이 있던 산의 이름이다.) 이곳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게 되는데, 아람과 이스라엘을 다스릴 새 왕을 세우고, 자신을 대신할 새 선지자를 세우는 것이었다.
바울이 회심을 경험한 후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온 이유는 엘리야가 그러했던 것처럼 언약 비준이 이루어진 곳으로 되돌아가려고 시내산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메섹에서 바울이 보여준 모습은 "예수를 선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라비아에서 바울에게 있었던 일은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었던 예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자신이 이해해 온 하나님의 목적, 토라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새로워지는 시간이다. 엘리야가 새 왕과 새 예언자에게 기름을 붓듯이, 바울은 나사렛 예수가 기름 부 음 받은 진정한 왕과 메시아이며, 세상의 주권자임을 선포하는 예언자 직무를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사울이 아라비아를 갔다가 되돌아 온 기간을 포함하여 그가 다메섹에서 보낸 시간은 3년이었고, 정확한 년도는 기원후 33~36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이곳에서 베드로와 2주간의 시간을 함께 보냈고, 예수님의 동생이자 이 새 운동의 중심인물로 인정받던 야고보를 보았다. 이후로 46년까지, 10년간의 기간은 바울에 관한 침묵기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울이 첫 서신인 갈라디아서가 기원후 46년경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이 있기 전 바울의 삶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기간을 10년의 침묵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기간 바울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의 삶을 유추할만한 세 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는 있다.
1) 그는 천막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사울은 천막을 만드는 가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천막을 만든다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가죽과 섬유를 다룰 줄 알고, 천막 외에도 그 재료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유대 사회의 교사는 가르치는 것만으로 생계를 꾸려가지는 않았다. 바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를 다니며 예수를 메시아와 세상의 주로 선포하는 것으로 먹고 살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고된 육체노동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사귀었을 것이다.
천막을 만드는 일의 특징 중 하나는 한 곳에 정착해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재료만 있으면 천막 만들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바울이 서신을 쓰고, 다른 사람들과 예수에 대한 대화를 할 때, 그 환경은 도서관이나 커피숍과 같이 고상하고 고매한 분위기의 환경이 아니라, 그의 비좁고 답답하며 분주한 작업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과 상황에서 13권이 넘는(성경에 포함되지 않는 서신을 포함하여) 서신들을 썼다는 것은, 분명 그가 본격적인 서신활동을 하기 전, 침묵의 10년이라는 시간이 그에 충분한 사색의 시간이며 성찰의 시간이 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2) 그는 기도하고 연구하며 온갖 종류의 일을 이해했다.
바울이 천막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고된 육체노동을 하며 서신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렇나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서신을 기록했다는 것은 그에게 특별한 은혜였다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이 쓴 고린도후서에는 자신이 경험한 영적인 체험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바울이 경험한 영적인 체험을 이해할 때 우리가 전제해야 하는 것은 그에게 기도와 묵상의 습관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3) 그는 그 주위에서 들려오는 모든 사상에 귀를 기울였다.
바울이 살던 시대는 수 많은 철학과 정치사상이 나타나고 유행을 하던 때였다. 물론 이러한 철학과 사상들이 이방인들의 어리석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했지만,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사유를 만유를 지으신 한 분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의 삶 속에 역사하고 계심을 일리주는 징표로 받아들였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사고하면서도 더 넓은 세계의 이론을 받아들이며, 세상의 지혜와 이스라엘의 지혜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과 비유사성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스토아학파 사람들이 만물이 한 데 어우러진 통일된 세계를 꿈꾸었던 것처럼, 바울도 그러한 세계를 꿈꿨다. 로마 제국이 모든 이가 오직 한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단일화된 사회를 꿈꾸었던 것처럼, 바울도 그런 사회를 꿈꿨다. 플라톤주의자들이 '하늘과 땅' 사이의 교류를 가능한 것으로 보았던 것처럼, 바울도 그것이 가능하다 믿었다. 물론 바울은 플라톤주의자들처럼 영혼이 이 땅을 탈출하여 하늘로 올라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으로 하늘과 땅의 교류를 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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