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바울 평전에 나온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에 대한 기록 중, 고린도에서 있었던 일들을 요약하고자 한다.
'고린도에 도착',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고린도에서 바울의 사역', '실라와 디모데와의 만남', '데살로니가전후서', '문제 1: 성, 돈', '문제 2: 파루시아'라는 소제목으로 나누어, 그 내용을 정리한다.
고린도에 도착
바울이 아테네에서 고린도까지 오는 데에는 3~3일 정도가 걸렸을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에 왔던 때는 51년 경이다. 그가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나온 지 몇 주, 내지는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여전히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자신을 쫓아올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걱정이 되어 디모데를 그곳으로 보내었으니 외로움도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서 고린도로 왔고, 그의 편지에서 "나는 약함 가운데 큰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이곳에 왔노라"라고 고백하였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바울은 고린도에서 새로운 동역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였다. 이들은 유대인이었고, 폰투스(흑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터키 도시) 출신이었다. 이들은 본래 로마에서 바울과 같은 천막을 만드는 일들을 했는데,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분란으로 인해 로마에서 추방을 당해 고린도까지 오게 되었다. 이 분란이 어떤 사건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에 의하면 이 사건은 '크레스투스'라는 이가 일으킨 폭동이었다고 한다. 그가 일으킨 폭동은 유대 공동체 안에서의 분란을 야기했고, 이 문제로 모든 유대인들에게 로마 추방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 일은 아마도 49년쯤에 일어났을 것이다. 바울은 이 부부와 금세 친해질 수 있었고, 바울은 이들의 집에 묵으며 생업을 같이 하고 복음 전하는 일을 하였다. 이후에는 이 부부가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 갈 정도로 매우 친밀해졌다.
고린도에서 바울의 사역
언제나 그랬듯이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회당을 찾아가 자신의 사역을 하였다. 그의 강론의 핵심에는 죽었다가 부활하신 메시아가 예수라는 것에 있다. 더 나아가 바울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 분의 죽음과 부활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음을 말하였다. 물론 바울은 이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회당에서 많은 논쟁을 했을 것이다. 분명 그가 전한 예수의 십자가는 사람들의 의문을 자아냈다.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십자가 사건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으며, 비유대인들의 관점에서도 가장 부끄럽고 무서운 죽음의 형벌이었던 십자가형을 받은 이가 메시아가 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라와 디모데와의 만남
그가 회당에서 유대인들 및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이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을 하였다. 디모데는 바울이 걱정하고 있었던 데살로니가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바울의 걱정은 기우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음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핍박을 받아 그들이 믿음을 잘 지키고 있을지를 걱정하였는데, 이들은 핍박 앞에서도 자신들의 믿음을 잘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이교도 세계의 관습과 문화, 우상들로부터 완전히 돌아섰고,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보였다. 이것은 예수가 이루신 승리의 모습이었다. 이 승리로 인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렇게 믿음을 잘 지키고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바울은 편지를 쓰게 되는데, 이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전후서"이다.
데살로니가전후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그들의 만남이 짧았기 때문이다. 짧은 만남이 이어졌지만, 갑작스러운 핍박으로 급하게 나오며 그들의 교제는 믿음을 성장시킬 만큼 길지 못했다. 그럼에도 복음의 능력은 그들 가운데 나타났고, 그 결과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 기쁨이 충만했던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들이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이 편지의 내용이 그들의 믿음에 대한 칭찬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믿음에 대해 온전한 가르침을 전수할 정도로 여유있는 만남의 기간을 가졌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언급을 한다. 그 문제는 성, 돈, 파루시아 parousia(예수의 강림)에 관한 것이었다.
문제1: 성, 돈
성과 돈에 관련된 내용은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명백한 답이 있는 문제였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거룩한 성생활을 해야 했다. 절제가 없이 성생활을 하고, 정욕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증거가 된다. 잘못된 성생활은 일종의 우상숭배이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킨 이들이 다시 우상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돈도 마찬가지이다. 돈은 그리스도의 제자도의 일부였다. 특히 재정을 통한 구제는 새로운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표지 중 하나였다. 실제로 이방지역의 교회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지속적으로 연보를 하였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공동체 안에는 사랑으로 재정을 나누는 일로 인한 2차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의 후원을 지나치게 기대어 게으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 누구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서는 안 되지만, 그리스도인은 외부인들이 존경할만한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권면을 주었다.
문제 2: 파루시아
이러한 문제들보다 복잡한 것은 파루시아, 바로 '예수가 왕으로 강림하심'에 대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들에게 예수가 그 사명을 완성시키고자 다시 오실 것이라 가르쳤는데, 어떤 이들은 예수가 다시 오시기 전까지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를 하였다. 고대 비유대세계에는 지금의 종말론과 같은 개념이 없었다. 시간이 궁극을 향해 가고 있다거나, 세상의 끝에는 분명한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스토아학파의 경우, 1000년에 한 번 대화재가 있을 것이라 주장하였는데, 이는 종말론적인 사건이 아니라 순환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이 시기 종말론이라 할 수 있는 사상은 유대세계의 종말론 밖에 없었다. 종말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이들에게 바울은 파루시아에 대한 소망을 일러둔다. 그때가 되면 먼저는 메시아에게 속하여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된다. 그들은 예수의 강림 때 다시 부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소망을 따라 모두가 주님과 하나가 될 것이다.
바울은 파루시아의 시기에 대한 언급도 하는데, 이는 '한밤 중에 도둑처럼' 오신다는 것이다. 로마에 의한 평화 사상이 만연하고, 로마제국 때문에 평화와 안전을 느끼던 당대 사람들에게 파루시아가 도둑과 같이 온다는 것은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 안전은 영원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미 시작된 새 세상과 완성된 새 세상의 중간 어디쯤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파루시아의 시기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우리의 삶이 성과 돈의 문제에서 본 것처럼, 새로운 삶에 걸맞는 행동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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