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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바울 평전(톰 라이트) 요약 15

by 도서리뷰어 2023.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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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표지 이미지

이번 포스팅에서는 바울 평전에 나온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일부를 요약해 본다.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에베소까지의 여정을 '에베소', '복음의 능력', '고린도전서', '고통스러운 서신', '에베소에서의 고난', '옥에 갇힌 바울'이라는 소제목으로 그 내용을 요약하고자 한다. 

 

 

에베소

바울은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길리기아와 갈라디아를 거쳐 아시아로 갔다. 그는 에베소에 도착하여, 늘 그래왔던 것처럼 회당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에베소에서 3달을 머무르는데, 이 기간 동안 안식일마다 회당에서는 바울의 성경 강론과 변증이 반복되었다. 바울의 강론에 유대인들은 혼란을 느꼈고, 그를 반대하는 소리가 커졌다. 아마도 이때 바울은 회당의 치리에 복종하여 40에 하나 감한 유대식 매질을 당했을 것이다. 신명기 25장 3절은 최대 40대까지만 때리도록 규정하는데 때리다가 혹시라도 횟수를 잘못 헤아려 40대가 넘게 때리는 일이 발생할까 봐 한 대를 더 줄여서 때렸다. 에베소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에 대한 잘못된 소문도 퍼뜨렸을 것이다. 함께 모여 문을 걸어 잠그고 누군가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신다던지, 새로운 종류의 사랑을 언급한다던지 말이다. 상황이 점점 악화가 되면서 바울은 더 이상 회당에서의 사역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것은 아바도 에베소에서의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복음의 능력

바울은 두란노라는 이가 소유한 지역 강당을 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회당에서 하던 사역을 이어갔다. 대도시였던 에베소에서 바울의 강연은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에베소에서 증거 된 복음은 골로새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골로새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빌레몬은 자신이 바울에게 목숨을 빚졌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빌레몬이 에베소로 사업차 출장을 갔다가 바울의 복음을 듣고 믿게 된 일을 가리키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복음은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등 다른 내륙지역에서도 역사하였다. 에베소에서 바울과 동역했던 에바브라는 골로새를 방문하였다가 그곳에서 좋은 소식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음을 바울에게 전해주었다. 

복음의 능력이 확장되면서, 자연스레 바울에 대한 권위도 높아졌다.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바울의 피부에 닿은 손수건과 수건도 치유하는 성질을 가지게 되었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바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도 두려워했고, 그의 이름을 사용하여 능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악귀는 "내가 예수를 알고 바울을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라는 말을 축귀 하는 이들에게 하기도 하였다. 

 

 

고린도전서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고린도 교회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다. 이 편지는 글로에 집안사람들이 전달해 주었는데, '글로에 집안사람들'이란, 글로에와 그의 실제 가족을 의미할 수도 있고, 글로에라는 사업가의 일꾼일 수도 있다. 그가 전한 편지에는 다양한 소식이 있었다. 교회 안에 다툼이 벌어진 소식,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며 우쭐대는 사람들의 소식, 근친상간의 문제, 성도들 사이에 벌어진 송사문제, 혼인문제, 이방신전에 바쳐진 제물을 먹는 문제, 은사와 부활의 문제 등. 이 문제들에 대한 답변으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쓰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서신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쓰면서 편지 말미에 자신의 방문 계획을 밝혔다. 그런데 그 방문 전에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바울이 쓴 고린도후서의 내용을 통해 확인을 할 수 있다. 바울은 아마도 53~56년 경 에베소에 머물렀을 것이다. 고린도전서를 쓴 직후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하였다. 고린도전서에서 방문계획을 밝힐 때는 그리스 북부로 가서 고린도로 향하는 육로여정을 말하고 있는데, 바울의 계획은 변경되었던 것 같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고린도를 방문하였었고, 이후 그리스 북부로 이동하여 나오게 된다. 이 방문에서는 바울이 상처를 입게 되는데, 고린도교회의 일부 지체들이 바울에 대한 반기를 들고, 공식석상에서 모욕과 조롱도 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바울은 마케도니아까지 가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배를 타고 에베소로 오게 된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를 향해 "고통스러운 서신"을 쓰게 된다. 이 편지는 디도에게 전달되어, 그가 직접 고린도에 가져다준다. 

 

 

에베소에서의 고난

에베소에서 바울의 사역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발생 한 때, 에베소에서의 고난은 절정에 다다랐다. 에베소는 오랫동안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긴 도시이다. 아르테미스는 충요와 다산의 여신이었고, 은으로 만든 여신상이 이 지역의 명물이었다. 고대에서는 작은 시상도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여신상을 신당에 모셔 놓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 가정과 사업장에 복을 달라고 기도했다. 바울은 "손으로 만든 신은 신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에베소 지역의 은세공 장인들의 분노를 샀다. 이들은 도시에서 "아르테미스는 위대하다"며 소리쳤고, 도시의 사람들도 여기에 함께 참여하였다. 이 외침은 순식간에 폭동으로 변했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원형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에 바울은 그곳에 들어가서 직접 말하려 했으나, 지역의 일부 행정관들은 바울을 말렸다. 누가는 이 난동에 대해 기록을 하면서, 바울은 그 어떤 법률도 어기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에베소에서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분위기 상 자신이 가진 로마 시민권을 활용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을 했다. 군중들이 만든 분위기는 바울을 옥에 가두게 하였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을 것이다. 며칠, 몇 주가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옥에 갇힌 바울

감옥에서의 기간은 고린도 방문 이후였을 것이다. 고린도 방문 이후 '고통스러운 서신'을 디도를 통해 전달하였는데, 이 일의 시점과 바울이 옥에서 풀려나 다시 고린도를 방문하게 된 시점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 어쨌든 바울은 2~3주 정도를 옥에서 지냈을 것이고, 그 당시의 상황과 자신에 대한 묘사는 고린도후서 1장의 내용에 부합하다고 볼 수 있다. 에베소에서의 감옥생활은 분명 이전의 그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바울이 옥에 갇히는 것은 세계를 지배해 온 세력들의 복수로 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에베소의 상황은 단순히 이 세력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어둠의 세력에 의한 것이었다. 바울은 지금까지 영적으로 어두운 세력들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가 멸하셨고, 그 세력들로부터 이미 승리를 얻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에베소 감옥에서 극한의 상황을 경험한 바울에게 이 믿음도 시험을 받았고, 그는 절망을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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