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바울 평전에 나오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의 일부분을 요약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바울이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재판을 받으며 연설한 내용과 함께 그다음 행선지였던 고린도 도시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하고자 한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학파', '바울의 변론', '고린도'라는 소제목으로 그 내용을 정리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바울이 아테네의 법정인 아레오바고로 끌려가기 전에는 회당과 장터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회당과 장터에서는 바울이 사람들과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변론을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바울은 당대의 주요 철학 학파인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학파와 논쟁을 하게 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신들이 존재하지만, 신들의 영역은 인간의 영역과 완전히 분리가 되어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인간 세계는 그들만의 힘으로 유지가 된다는 것인데, 그 힘을 '원자'로 보았다. 원자의 움직임은 충돌을 일으키고, 그 결과는 삶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반면 스토아학파는 기본적으로 범신론의 사상에 입각한다. 신과 세계는 동일하며, 신이 부여하는 생명의 불꽃인 로고스 logos가 모든 만물 안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 생명은 만물 안에서 엄청난 불꽃을 내며 타오른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현명한 인간의 삶은 내면에 존재하는 로고스를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라 보았다.
반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과 달랐기에 그들의 눈에 바울은 괴짜로 보였을 것이다. 인간과 상관없는 신들의 세계나 범신론에 입각한 개념이 주류인 이곳에서 바울은 한 분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가 세상에 오셔서 새로운 세계를 이루셨다는 복음의 주장은 그들에게 터무니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 터무니 없는 신을 아테네로 가지고 들어온 바울은 아테네의 사람들에 의해 고발당하고 아레오바고까지 끌려오게 된 것이다.
바울의 변론
다양한 철학이 만연한 이곳에서 바울은 한 분 하나님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만유의 창조주이시고, 철저한 초월자인 동시에 친밀한 인격체로서 인간에게 다가오셨다. 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진 이들은 아테네의 철학이 세상에 대한 진리를 언급하지만, 그 지식이 결코 세상 전체를 아우를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메시아이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함으로 승리를 이루었고, 그 승리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 세상에 선포하였다. 사람들이 가진 철학적 지식은 부분적이라 이러한 의미를 결코 밝혀낼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무지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무지를 내려놓을 때, 참된 지식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들이 가진 무지가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아테네에 있는 다양한 신들인데, 자신들이 무지함을 인정하고 내려놓으면, 비로소 이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형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분명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는 존재인데, 지금의 행태는 인간이 신을 먹여 살리고 있지 않는가? 인간은 신의 꼭두각시라는 스토아학파의 주장과 달리, 하나님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고귀한 존재이다. 신과 세상은 완전히 분리가 되어있다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주장과는 달리, 하나님은 세상과 구별은 되시지만 분리된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신을 알기를 원하신다.
어떤 이들은 바울의 변론을 비웃었을 것이다. 아레오바고 구성원 가운데 몇몇은 회심을 했으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그들이 모인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이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난 것을 의미했다.
고린도
고린도는 그리스의 북부인 아테네와 남부인 스파르타 사이에 위치한 좁은 목 모양의 도시로, 이 남북의 도시들을 이어주는 교통로가 바로 고린도의 지협이었다. 고대에는 지협을 파내서 지협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였다. 약 6.4km 정도의 길이였는데, 이를 파내어 운하를 만들기만 하면, 무역을 위한 배들이 더 이상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돌아갈 필요 없이 이 운하를 통해 고린도 만과 에게해를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하를 만드는 일은 번번이 실패하였다. 배를 물 위로 끌어올려 고로를 이용해 배를 끌고 반대편 바다로 옮기는 시도도 했으나, 이는 전혀 효율적이지 못했다. 운하가 완성만 되었다면 고린도는 그 수입으로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겠으나, 운하가 없어도 고린도는 충분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고린도에는 신선한 물이 흘러 나는 곳들과 비옥한 해안 평야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린도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도덕적으로 문란하였다. 이 도시는 기원전 146년 로마에 약탈을 당한 후 폐허로 존재하고 있다가 기원전 44년에 로마 식민지로 재건이 되었다. 로마의 식민지로서 황제숭배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었다. 고린도에는 아프로디테, 포세이돈, 아폴론, 아스클레피오스와 같은 신들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는데, 황제를 섬기기 위한 신전은 다른 신전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이곳에는 로마에서 온 노예출신의 자유인들이 원주민들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교역과 수송에 유리한 고린도는 로마의 사업가들의 눈에 기회의 땅으로 보였고,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노예출신의 자유민들을 이곳으로 모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유한 도시들에는 소수의 부자들과 다수의 빈자로 구성이 되었는데, 고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이 도시의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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