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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이단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 도서 리뷰 요약정리(3)

by 도서리뷰어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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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이미지

이 책의 저자인 저스틴 홀콤은 정통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정통이란 성경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교훈이자, 성경의 가르침을 가장 잘 요약한 것이다(p.12)" 반대로 이단이란 '정통적인 교훈에서 벗어나 자기 입맛에 따라 교리를 선택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초대교회 시대 대부분의 이단들은 예수님을 이해할 때 "정통"을 벗어났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하지 못해 이단으로 판명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아리우스, 아폴리나리우스, 펠라기우스에 관한 내용을 리뷰하고 요약정리합니다. 

 

아리우스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습니다. 아리우스는 안디옥의 루키아누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와 함께 수학하였는데, 이 세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성보다 인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을 거부하면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게 되었는데, 인성에 대한 강조가 신성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면서 아리우스의 견해는 이단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리우스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논리에서 나온 신에 대한 두 가지 관념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신의 불변성과 무감각성입니다. 불변성은 '신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무감각성은 '신은 고통을 겪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두 관념을 이용해 성자가 성부와 같이 영원한 존재는 아니지만 최상의 피조물이라는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그에게 성자는 성부로부터 '영원히' 낳음을 받은 분이었지, 동일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성부가 성자와 동일하다면, 성부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온갖 고난을 당하셨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불변하시고 무감각하신 성부에 대한 신성모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한 신적 본질을 가지지 않았고, 단지 유사본질(호모이우시오스)을 가졌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아폴리나리우스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관련된 논의는 칼케돈 공의회(451년)를 통해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 논쟁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시리아의 안디옥 학파의 논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모호하게 구분하였습니다. 반면 안디옥 학파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극단적으로 구분하여 잠재적으로 이중적인 인격을 나타내는 사상을 전개하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아폴리나리우스이고, 안디옥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네스토리우스였습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예수님 안에 있는 완전한 신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육신 하신 하나님, 육체를 가지신 하나님, 여자에게서 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선호하였습니다. 문제는 그가 예수님의 신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경시하는 극단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인성을 취하되 인간의 몸과 감각적인 혼만을 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인성을 '신체, 영혼, 정신'으로 구분하였는데, 신체와 혼은 인성을 이루는 열등한 부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대신 로고스(말씀)가  정신의 자리에 들어간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인간 본성의 중요한 부분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격을 가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예수님은 인성의 2/3만을 취하신 것인데, 이것은 구원을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이어야만 모든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펠라기우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4세기까지 인간의 본성에 대해 2가지 사실을 믿었습니다. "1. 인간의 본성은 타락했고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과 "2. 인간은 의지가 있고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명제는 각각으로 볼 때 옳지만, 사실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가 논쟁을 하게 됩니다. 펠라기우스는 2번 명제에 강조점을 둔 주장을 하였는데, 인간 본성의 타락에 대해 서는 부정 하였고,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를 일반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며,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100% 지키며 살 수 있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하나님 역시 인간에게 하실 수 있는 만큼의 명령을 주시는 분이라 여겼습니다. 사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데에는 당시 시대상황의 반영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식종교로 공인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기독교를 선택하였고, 이로 인해 기독교의 도덕적 해이는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본 펠라기우스는 기독교인들의 거룩한 삶을 독려하려는 차원에서 인간본성을 선한 것으로 여기고, 금욕적인 생활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첫 시작은 기독교인들의 바른 삶을 위한 방편으로 주장하였지만, 결국 그의 주장은 극단으로 가게 되어, 결국은 에베소 공의회(431)를 통해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중립적인 상태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허락하셨고, 그것을 인간이 충분히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의지와 행동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인간 개인의 영역이라 사람마다 선을 행하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펠라기우스에 따르면,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죄을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죄에 대한 인정이 없으니, 대속이나 이신칭의 같은 교리를 자연스럽게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은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같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간 본성에 이미 주신 본래의 능력'으로 보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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