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바울의 평전 중, 안디옥에서 베드로의 당황스러운 행동 이후의 내용을 요약한다. 이 일은 갈라디아 교회에 있었던 '복음에 다른 것을 더 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 내용을 '후폭풍', '의로움', '갈라디아에서의 문제', '유대교의 압박', '바울의 대응', '갈라디아서'라는 소제목으로 그 내용을 요약하고자 한다.
후폭풍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인들의 등장에 베드로는 이방인들과의 식사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고, 지금까지 베드로와 함께 뜻을 같이 했던 유대인들도 그를 따라나섰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아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였고, 그렇게 새 세계가 시작되었는데 지금 베르도가 보여준 행동은 '새 세계의 시민으로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새 세계의 시민인 것처럼' 연기를 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졌던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은 교회 공동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보십시오.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이방인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이 되라고 강요할 수 있습니까?"(p.138) 베드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행동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치 할례를 강요하여 유대인처럼 되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의로움
"우리는 태어나면서 유대인이지 '이방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유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메시아 예수의 신실하심을 통해 '의롭다'고 선언됨을 압니다."(p.139. 갈라디아서 2:15-16)
현대 신학에서는 '죄인인 사람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갈라디아서 말씀을 연구하지만, 갈라디아서의 저자인 바울에게는 '의롭게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약 가족 안에 있는 신분"이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사용하는 "의롭다"는 단어는 '올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 관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의미한다. 언약 가족의 일부가 되는 것은 유대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이신 예수의 신실하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갈라디아에서의 문제
베드로가 머물고 있던 안디옥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람들이 왔던 그 시기에, 갈라디아에도 어떤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를 가지고 오게 되었다. 이들이 와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이야기한 것도 안디옥을 찾은 이들과 비슷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그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것인데, 그 백성은 할례를 받은 이들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열심'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은 벌을 받아야 할 악당이었다. 유대인들에게는 토라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는데, 토라를 지키는데 위협이 되는 이들이 바로 이방인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일이고,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약속에 대한 도전이었다.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온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또 다른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유대교의 압박
로마 제국 치하에서 유대인들은 제국의 문화(황제숭배 사상 등)로부터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황제숭배와 같은 지역의 종교 제의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식적인 허락을 받았었다. 지역 사회에서 일반인들의 눈총을 받으며 제의참석 의무를 지지 않았던 유대인들이었는데, 예수운동의 결과로 일어난 새로운 공동체는 이들에게 매우 부담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과는 또 다른 형태로 로마제국에 대항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과 비슷하지만, 할례도 행하지 않고 절기도 지키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 역시 지역에서 행하는 제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이들은 유대인 같으면서도 유대인과는 달랐고, 이들이 로마 제국에 충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 새로운 공동체 사람들의 이런 행동들이 자신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들에게 압력을 넣고, 이방 지역에 있는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들에게 할례 받을 것을 권하라고 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는 추측이지만, 상당히 합리적인 추측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의 대응
갈라디아 교회에 일어날 일로 바울은 충격을 받은듯 하다. 그냥 유대인도 아니고 예루살렘 교회가 보낸 사람들이 와서 할례와 절기를 강요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들의 말에 넘어가 굴복한 갈라디아 교인들이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이루어주셨고, 그곳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다고 확신을 한 바울은 이러한 일들도 말미암아 다시 옛 세계로 돌아가는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이 쓴 편지가 바로 갈라디아서이다.
갈라디아서
바울은 서신의 인사에서 자신을 사도로 소개한다. 그런데 자신의 사도됨은 메시아이며 우리의 주이신 예수로부터 왔음을 밝힌다. 바울은 이들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데, 그것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새 시대의 첨단'이다. 유대인들에게 세계사는 슬픔과 치욕과 유배와 죽음의 역사였고, 이러한 시대를 끝내는 것이 바로 '다가올 시대'였다. 옛 시대와 새 시대 사이를 이어주는 분이 바로 예수이시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십자가와 부활)은 옛 시대가 부서지고, 새 시대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하였다. 갈라디아서는 새 시대의 시작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서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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